잊기엔 너무 선명하게 나의 귓가에 새겨진 너의 목소리가 뇌 속을 파고든다. 누구도 소리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. 그 남자의 목소리를 직면으로 마주쳤을 때 난 알 수 있었다. 이 목소리는 필시 날 죽이려 하고 있다. 의심이 직업인 내가 파악한 최후의 생각이었다.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, 그 이름이 불러온 파장을 느끼고 있는 그를 보았다...
모태구는 죽었다. 아빠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달리고, 겪었던 모든 순간들이 날 지나쳐간다. 고통에 울부짖는 허지혜씨와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아버지의 목소리를 연속해서 들으면서도 그 놈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해야했다. 귀에 딱지가 질정도로, 그 놈의 형체만 봐도 그 목소리와 겹쳐보이도록. 그가 무참히 사람들의 마음과 울음을 짓밟는 그 순간들을 난 계속해서...
“아가씨, 왜 네 감방 비워두고 여기서 깽판일까.” “깽판 아니고 염탐.” “그니까 왜 나를 염탐 하냐고.” 오늘 밤엔 아이를 내 빵 밖으로 내보내야한다. 오늘은 꼭 류혜진한테 연락을 해야 한다. 안 하면 분명 빵에 찾아올 거고, 그렇게 되면 삼자대면 밖엔 답이 없다. 내 침대에 다리를 걸치고 반 쯤 누워있는 아이의 팔을 끌어 올린다. 축 늘어져서 힘을 줄...
그 소동 이후 유소람은 시도 때도 없이 날 찾았다. 직접 찾아오는 건 이미 익숙해졌고, 여옥까지 잡아 세우고 추궁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. 한 두 번은 얼떨떨하다가 다섯 번째에 다다르니 귀엽다고 느꼈다. 그렇게 발악하고 죽일 듯이 보던 그 눈빛이 아직 잊혀 지지 않았는데 이젠 옆에 꼭 붙어서 강아지처럼 안기는 꼴이라니. 하루 만에 사람이 변할 수 있나 ...
꾸역꾸역 점심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.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가 몇 번 울리다가 이내 잠잠 해진다. 유소람이 안 보인다. 애써 찾은 건 아니지만 갑자기 안 보이니까 또 불안해진다. 이 아가씨는 나한테 뭘 먹인 건지 하루 웬 종일 그 아이 생각 밖에 안 난다. 눈을 감았다가 뜨고, 몇 번이나 뒤척였다. 해가 아직 중천이다. 졸릴 리가 없다. 뜻 없...
“여옥아, 내 눈 앞에 저거 나만 보이냐?” 어이가 없어서 목구멍으로 반쯤 넘어갔던 밥알이 튀어나올 뻔 했다. 이게 지금 무슨 일일까. 어제와 다름없이 식탁에 앉아서 국, 반찬 없이 밥만 묵묵히 퍼먹고 있었다. 초록머리는 꺼지라고 정말로 꺼져버렸다. 후련한 건지, 미련한 건지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어서 입을 오물거리며 밥만 처먹고 있을 때, 낯익은 향기...
유소람은 그 날 이후 몇 주일 동안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. 겁을 먹어서 안 오는 건지 상대하기 귀찮아서 안 오는 건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제 확실해졌다는 거다. 유소람이 소장 애인인 것이. 그 날 유소람이 피 떡으로 만들어 논 그 애를 추궁했다.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아프게 피로 물들었다. 사실 추궁이랄 것도 없었다. 눈만 몇 번 찡그려도 벌벌 ...
4년. 이 거지같은 빵에서 왕으로 군림하던 세월이 벌써 4년이나 흘렀다. 이제 겨우 6개월 남았다. 6개월만 버티면 나갈 수 있다. 사실 여기서 지내든 밖에서 살든, 설치고 기어오르는 놈들은 줄지 않을 거지만 가끔 막히는 숨들이 괴로웠다. 담벼락 하나로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. 이 짓도 이제 못 해먹겠다. 이소연이 안팎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지만 류혜진이...
"그때 왜 그랬어요. 좀 더 평화로울 순 없었어?" 텅 빈 공간에서 울음에 찬 네 목소리가 들려온다. 이 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. "아가씨, 내 세상이 원래 이래. 저기 멀리 빛이 있어서 막 달려갔는데 그게 촛불이네? 내가 달려가서 생기는 그 바람으로 꺼지는 촛불인거야. 그딴 게 내 세상이고, 지금 이 순간인거야." 바람을 가르고 나오는 날선 말...
세계를 만들기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. 제가 만들어 낸 인물들을 사랑합니다. 현재 권총을들고 연재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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